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가운데 가장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도
무척이나 놀라웠던 작품인 “욕망”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Blow up", 즉 ‘확대’라는 의미의 제목이다. 하지만 이것이 국내에
선 “욕망”이란 제목으로 바뀌어 개봉되었다.
우연인지 몰라도 안토니오니의 또 다른 대표작인 “L'Avventura”, 즉 ‘모험’이란 의미
를 지닌 제목이 국내에선 “정사”로 둔갑하여 개봉하기도 했었다.
1966년,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벗어나 영국에서 촬영한 “욕망”은 “붉은 사막”에 이은
안토니오니의 두 번째 컬러영화이기도 하며 제20회 깐느 영화제의 황금종려상 수상
작이기도 하다.
그럼 이제부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을 바흐친의 카니발 개념을 통해 분
석해 보겠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문학자 중 하나인 미하일 바흐친은 러시아 출신으로 카니발
이론을 확립하였다.
안정화 되어있는 사회적 구조가 카니발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개입으로 기존의 개념
이 서로 뒤바뀌는 혁명적 결과를 낳게 되는 상황을 학문적으로 구체화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욕망”의 주인공은 런던에서 나름 잘 나가는 사진작가인 토마스다. 그는 사진에 대
한 열정과 능력을 모두 지닌 괜찮은 사진작가이며, 그와 작업하고 싶어 안달인 수많
은 미녀모델들에게 둘러싸인 채 살아가지만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듯
보인다.
영화 초반 한 여자모델을 촬영하는 에피소드를 살펴보자.
촬영 전 그는 외출했다가 늦게 돌아와 그녀를 오랫동안 기다리게 만들어 놓고도 전
혀 미안하다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까칠하다시피 대한다. 하지만 촬영에 들어간 순
간부터 그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바뀌며 심지어 그녀에게서 원하는 표정을 얻어내기
위해 키스까지 하면서 촬영을 한다. 마치 깊은 관계의 연인인 듯 퍼포먼스를 펼치던
토마스, 하지만 촬영이 끝나자마자 이전처럼 그는 까칠하고 건조하게 그녀를 바라보
는 것이다.
사진촬영이라는 카니발적 모티프를 통해 토마스와 여자모델은 대관과 탈관을 경험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그가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나무 프로펠러를 통해서도 이러한 적용이 가능
하다. 토마스는 곧 영국을 떠나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그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는 욕망을 영화 내내 은근히 표현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호들갑을 뜬
다고 여겨질 정도로 과잉흥분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프로펠러를 발견한 직후의 모습
이었다.
그의 내면 속에서 피어나는 날고 싶다는 욕망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날고
싶다거나 혹은 속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은 한편으론 비상 또는 일탈이란 카니발
적 모티프를 통해 안정감 혹은 부와 명예가 자유로움과 편안함으로 탈관되어지는 것
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로 대관되어질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토마스는 공원에서 불륜관계로 보이는 두 남녀의 다정한 모습을 몰래 촬영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들을 찍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여자는 토마스에게 촬영을 거
부하며 필름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만 토마스는 그에 응하지 않은 채 떠나버린다.
그가 스튜디오로 돌아오자 문 앞엔 어떻게 알았는지 그 여자가 와 있었고 그를 따라
들어온 그녀는 끝까지 필름을 요구한다. 이후 스튜디오라는 카니발적 모티프 속에서
음악과 반대되는 리듬으로 춤을 추라는 그의 요구에 응하는 그녀, 옷을 벗으면서 그
를 유혹해 필름을 돌려받으려는 그녀,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필름을 돌려주겠다는
그, 하지만 다른 필름으로 바꿔서 돌려준 그,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다시 옷을 입으
며 돌아가겠다는 그녀, 아쉬움에 연락처를 요구해 얻어 낸 그, 하지만 거짓 연락처를
알려준 그녀, 이렇게 그와 그녀는 대관과 탈관을 거듭 경험하게 된다.
그녀가 떠난 후 그는 진짜 필름을 가지고 사진을 현상한 후 잡지에 싣기 위해 그 사
진들을 의미 있는 스토리로 짜 맞추는 과정 속에서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사진 속 그녀의 시선에 호기심을 느낀 그는 사진을 ‘확대’하고픈 ‘욕망’을 실현하게
되고 결국 그는 총을 든 킬러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확대’, 즉 ‘Blow up’이란 카니발적 모티프를 통해 속물적이고 개인주의적인데다 매
너리즘에 빠져있던 그가 탈관과 대관의 거듭된 경험을 통해 마치 스릴러 영화 속의
천재적인 형사나 탐정과 같은 위치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사진 속의 두 남녀에게 사진촬영이란 행위를 통해 개입했기에 살인을
막을 수 있었다는 자부심마저 느끼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이러한 카니발적인 상황을 종료시키는 개입자가 등장한다.
바로 그가 찍는 사진의 모델이 되고 싶어 찾아온 두 명의 모델 지망생인 아가씨들이
었다. 이전에 찾아왔을 땐 거만한 태도로 돌려보냈던 토마스, 하지만 이번엔 그녀들
에 대한 성적 ‘욕망’ 때문인지 안으로 들이고는 문란해 보일 정도로 파격적인 유희를
즐긴다. 성적 ‘욕망’에 의한 대관과 탈관의 미학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된다.
그녀들과의 유희가 끝나고 그는 우연히 아까 그 사진 속에서 새로운 장면을 발견해
낸다. 흐릿한 장면이었기에 또 다시 ‘확대’라는 과정을 거쳐 그것이 그가 촬영한 두
남녀 가운데 남자의 시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곧바로 그녀에게 연락해 보았으나 없는 번호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공원으로 가서
시체를 확인한 후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놀랍게도 돌아와 보니 사진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우연히 구석에 들
어가 있던 한 장을 제외하곤 말이다. 사실 이 에피소드와 연결되어진 토마스의 옆집
에 사는 친구가 그린 그림 및 그 친구의 여자친구, 그리고 식당 앞에서 그를 감시하
다 도망친 남자 등을 통해 메타포적 장치를 통한 열린 전개의 과정을 보여주는 듯 보
이기도 한다.
이어서 토마스는 그의 에이전트인 론을 만나러 가다가 사진 속의 그녀로 보이는 여
인을 발견하곤 차에서 내려 달려갔지만 놓치고 만다. 그녀를 찾다가 들어가게 된 클
럽에선 당시 최고의 밴드 중 하나였다던Yardbirds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공연이 절정에 달하자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한 후 관객
들에게 집어던진다. 관중들은 놀라운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부서진 기타를 차지하려
는 쟁탈전을 벌이게 되고 토마스는 운 좋게도 그 기타를 차지한 후 추격을 뿌리치고
클럽 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리곤 그 기타를 길에다 버리게 되고 그걸 주운 남자는 유
심히 살펴본 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는 다시 버리고 만다.
사진 속의 그녀를 찾던 토마스가 우연히 마주한 클럽에서의 돌발 상황에서 기타를
차지하겠다는 ‘욕망’을 통해 그 부서진 기타를 획득했으나 그 콘서트라는 카니발적
모티프에서는 대관되었던 부서진 기타가 클럽 밖에선 다시 탈관되어진 것이다.
곧 이어 토마스는 에이전트인 론을 찾아가지만 클럽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던 론은
환각상태여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며, 오히려 론의 유혹에 넘어간 토마스는 마
리화나라는 카니발적 모티프를 통해 환각상태로 탈관하게 된다. 다음날 아침 깨어난
토마스는 공원으로 달려가지만 시체의 흔적은 송두리째 사라지고 없었다.
사진이라는 시각적 소재를 다루는 사진작가인 토마스는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삶을
살아왔으며 그래서 ‘확대’하고픈 강한 ‘욕망’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러던 그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된 시체를 생각하며 좌절하고 있던 중에 그와 같은
현대사회의 지식인과는 반대되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인 도시의 걸인들이 공과 라
켓 없이 테니스를 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걸인들이 테니스 퍼포먼스 도중 멀리 날아간 공을 토마스에게 주워달라고 하자 그
는 잠시 망설인 후 보이지 않는 그 공을 주워 그들에게 던진다.
이후 그는 테니스 치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걸인들의 테니스 퍼포먼스라는 카니발적 모티프 속에서 토마스는 보이는 것 혹은
‘확대’라는 ‘욕망’에서 탈관 혹은 대관되어 전혀 다른 차원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며, '확대'만을 통해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진실
을 안토니오니 특유의 시각을 통해 표현한 위대한 걸작이었다고 생각한다.
'20세기 마지막 예술가'로 불리는 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대표작 가운
데 하나인 "율리시즈의 시선"은 1995년, 영화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작품이
다.
인간, 혹은 인간의 삶을 오디세우스(율리시즈)의 여정에 빗대어 '율리시즈의 시
선'을 통해 궁극의 본질을 향해 가는 과정을 앙겔로풀로스 특유의 느림의 미학으로 보
여준다.
상징적 의미만이 아니라 실제로 이 영화는 그리스에서 알바니아를 거쳐 내전이 한
창인 폐허가 된 보스니아를 지나 독일에 이르기까지의 머나먼 여정을 로드무비의 이데
아라 할만큼 완벽한 완성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마치 나 자신이 동행하고 있는 듯하게 말이다.
특히 산산조각 나버린 레닌 상을 싣고 가는 수송선과 감독 자신의 어릴적 경험을 토
대로 연출된 자욱한 안개 속의 시체더미를 지나가는 시퀀스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명장면이다.
'율리시즈의 시선'은 무섭도록 시리고 날카로워서 차마 마주 볼 수 없을 듯 하지만
그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친 순간, 드디어 그 길고 길었던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지극히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가야만 얻고자 하는 해답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너무나 입체적인 내러티브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걸 모두 읽어낸다
는 건 너무 어려운 것이기에 나는 그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코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
었다.
지금 이렇게 미약하게 삶의 여정을 걷고 있는 나 자신도 달리 생각하면 오디세우스
와 같은 영웅의 의미 있는 걸음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 그래서 궁극의 본질에 도
달하기 위해선 누구든 고되고 기나긴, 끝이 없을 것처럼 막막한 인생이란 여정을 한
걸음씩 걸어 가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차갑게, 뼛속까지 시려오게끔 보여주고 있는
경이로운 작품이었다.
2007년 7월 30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동시대의 또 다른 거장인 잉그마르 베르
히만과함께 만 95세 생일을 두 달 남긴 채 생을 마감했다.
위대한 두 거장이 우연히도 같은 날 저 세상으로 간 것이다.
60년대 “정사”를 시작으로 “밤”, “태양은 외로워”, “욕망”을 연달아 탄생시키며 새로
운 현대 영화의 형식을 창조해 냈으며, 세계 3대 영화제인 깐느, 베니스, 베를린 영화
제의 그랑프리를 모두 휩쓸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부
르주아 여성 혹은 지식인 남성들을 소재로 삼아 모호한 내러티브 구성과 내면세계에
대한 철학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을 통해 진정한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영화작
가였다.
물론 네오리얼리즘 형식의 유일한 작품인 “외침”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상
류층을 다루고 있는데다 형식주의적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프랑수아 트뤼포와 같은
누벨바그 세력들로부터는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개인적으로 보기엔 루이 브뉘엘과 장 르누아르에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절묘하게 뒤
섞인 스타일을 지니고 있는 게 바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작품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장 뤽 고다르의 작품 가운데서도 “경멸”은 마치 안토니오니
의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경멸”은 가장 고다르적이지 않은 고다르 영화라
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외의 작품에선 그다지 유사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제7의 예술이라는 의미에서의 영화를 극한까지 추구하여 모더니즘 영화를 완성한
위대한 씨네 아티스트임과 동시에 영화의 예술적 한계에 대한 안타까움마저 영화적
예술로 표현한 고뇌하는 철학자이기도 했던 이가 바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였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그리스 출신의 영화감독이며, 20세기 최후의 영화 예술가로
불리운다.
2004년 부산 국제 영화제 때 초대 마스터 클래스로 초청된 그의 작품들을 처음으로
접한 후 문화충격을 받았고, 이후 가장 존경하는 현역 감독으로 꼽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길게 찍기의 미학을 경지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으며, 그
리스의 신화 혹은 역사라는 토대 위에서 로드무비와 롱테이크의 형식으로 인간, 철
학, 정치 등을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해 내는 진정한 마에스트로, 그 자체인 것이다.
그의 영화는 '여백의 미'라는 동양적 미덕을 담고 있으며, 그로 인해 관객은 능동적
으로 사색하게 되며, 결국은 관객에 의해 완성되게끔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영화 보는 눈이 외눈박이였던 나에게 또다른 눈 하나를 선사해 준 이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남은 여생동안 그가 평생의 벗이었던 영화와 함께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오사키 요시오의 소설 "아디안텀 블루"의 여주인공인 요코는 물웅덩이에 비친 세계를 카메라에 담는 독특한 사진작가다. 그래서 나도 요코처럼..

물웅덩이에 피어난 거품이 마치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위로 내리는 눈송이처럼 보인다.

물웅덩이에 비친 전봇대의 모습이 토론토에 있는 CN타워의 모습과 흡사하다.

물웅덩이 속에서 또다른 해가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