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30일 수요일
게임의 규칙
2년 뒤에 탄생한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을 통해 유명해진 '딥 포커스' 기법을 이미 구체적
으로 실현시켰던 작품이며, 완성도 높은 롱테이크 샷과 유려한 카메라 워크를 구사하여 궁극
의 미장센적인 묘미를 만끽하게 해 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당시 유럽 상류층 사회의 부패와 위선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기에 당시의 관객들에겐 상
당한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개봉 당시엔 수많은 비난에 시달려야 했
으며, 흥행에 있어서도 뼈아픈 좌절을 맛보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완성도는 경이로웠기에 결국엔 앙드레 바쟁, 프랑수아 트뤼포 등의 누벨바
그 기수들에 의해 재조명되어졌으며, 현대 영화의 대표적인 텍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딥 포커스와 롱테이크 등의 정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기반으로 하지만 치밀하게 구성되어진
등장인물들의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인해 보다 입체적인 영상미를 보여준다.
또한 극 중의 '옥타브' 역으로 직접 출연한 장 르누아르 감독의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신
선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2009년 9월 29일 화요일
황금시대
루이 브뉘엘 감독의 충격적이었던 단편 데뷔작 '안달루시아의 개' 이후 선보인 장편 데뷔작품
이며, '안달루시아의 개'와 마찬가지로 그의 친구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만
든 작품이기도 하다.
1930년 작으로 유성영화 1세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영화는 파격이란 단어를 처
음으로 영화에 적용할 수 있게 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전갈의 움직임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
지 가톨릭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가톨릭을 중심으로 한 상류사회의 가식적이고 비열한 현실을 충격적이고 풍자적으로 비틀어
서 표현하였으며, 달리의 영향 때문인지 초현실적인 회화적 분위기의 영상연출이 돋보인다.
지금 만들었다고 해도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들의 연속이기에 개봉 당시 이 영화를 접했을 이
들에겐 얼마나 큰 문화충격이었을지는 직접 겪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솔직히 나 역시도 종교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래서 종교에
대해 언제나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크리스천들과는 달리 무척 긍정적으로 이 영화
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 영화는 상식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지니지 않은 난해한 작품이었기에 보는 게 그리 수
월하진 않았지만 감상 후엔 뿌듯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시대를 앞서간 거인의 놀라운 장편데뷔작이었다.
2009년 9월 28일 월요일
7인의 사무라이
진정한 거장은 오락영화 마저도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게 해 준 영
화가 있다.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이다.
장르영화의 최고 거장들이 만든 작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오히려 장르영화의 보편적
인 형태와는 다른 독특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장르영화가 최정점에 도달하게 되면 비로소 그 형식을 초월하여 작가주의적 예술영화
와의 절묘한 결합을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가 바로 '7인의 사무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전쟁을 촬영한 것처럼 놀라운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전투신과 섬뜩하리만치 실감
나는 등장 인물들과 시공간적 배경에 대한 상황설정을 통해 표현되어지는 현실 비판 및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은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전투에서의 전체와 부분 개념이 간결하면서도 치밀하게 표현되어졌기에 스탠리 큐브릭
의 '풀 메탈 자켓'과 함께 가장 디지털적인 전투 상황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탄생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진정 위대한 영상시인이었다.
솔직히 그의 영화는 너무 어려워서 최소한 서너번은 중간에 잠이 들었다가 엔딩 크레딧이 나
올 때 깨어나기 일쑤였다.
그는 카메라로 시를 쓴다. 그가 롱테이크 기법을 통해 보여주는 영상들은 그의 혼이 담긴 아름
다운 시어이기에 우리는 천천히 그 의미를 찾기 위해 고뇌하게 되는 것이다.
기나긴 고뇌의 끝에는 언제나 삶의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 열려 있다.
바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라는 유능한 가이드와 함께 하는 찬란한 길 말이다.
관객의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가 아닌 관객이 작가의 언어를 배워야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빚
어내는 무례한 예술가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무례한 장인의 작품에 자꾸만 손이 가는 것은 왜일
까?
타르코프스키가 그리워지는 가을날의 오후다..
잉그마르 베르히만
위대한 영화감독 가운데 가장 최근에 작고하신 분이다.
놀랍게도 동시대의 또다른 거장이었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같은 날 돌아가셔서 영화팬
들에게 두배의 슬픔을 안겨 주기도 했었던 기억이 있다.
놀랍도록 섬세하게 인간의 심리를 묘사했으며,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접근을
시도했던 스웨덴 출신의 영화작가였다.
그의 대표작들인 '제7의 봉인'이나 '산딸기'를 통해 보여주었던 죽음과 마주한 인간에 대한 심
리묘사는 정말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들은 놀랍도록 탁월하지만 너무 진지해서 부담스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다신 볼 수 없는 그의 신작이 막연하게 기다려지곤 한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흔히들 로베르토 로셀리니에 대해 말할 때 '네오 리얼리즘'의 선구자라고 칭한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지만 그건 로셀리니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그와 같은 함정에 빠져서 처음엔 그의 위대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다.
'무방비 도시'라는 놀라운 업적이 오히려 그에겐 양날의 검과 같이 느껴진다.
그로 인해 로셀리니를 어떤 틀 속에 가두어 버린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무방비 도시' 이후에도 그는 놀랄만큼 혁신적인 시도와 다양한 변신을 거듭하며 최고의 영화
작가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이후 등장하는 누벨바그 세대와 작가주의 모더니즘 세대에게 크나
큰 영향을 끼친 거장이었다.
장 르누아르
장 르누아르는 내가 생각하는 최초의 영화작가이다.
또한 그는 위대한 인상파 화가였던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아들이기도 하다.
축복 받은 예술적 유전자를 제대로 이어받은 듯하다.
르누아르로 인해 영화는 서커스와 같은 단순한 눈요기 거리의 오락장르에서 벗어나 진정한 예
술적 표현의 수단으로 격상되어졌다고 생각한다.
의미있는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미장센의 개념을 확립했으며 회화적이면서도 음악적인 영상
을 창조해 냈다.
그리고 또한 그는 이후의 누벨바그 세대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모든 영화작가들의
아버지 같은 존재로 추앙 받고 있다.
루이 브뉘엘
너무나도 우월한 영화적 창의력의 소유자였으며, 상식을 뛰어넘는 기행을 일삼았던 기인이기
도 했던 20세기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바로 스페인 출신의 거장인 루이 브뉘엘이다.
모든 작품들이 문제작이었으며, 유.무성 영화와 흑백.컬러 영화에다 극영화뿐만 아니라 다큐
멘터리 영화에서도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으며 초현실주의와 리얼리즘이라는 극명하게 다
른 두 도구를 모두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던 진정한 천재 예술가였다.
평생동안 집요할 정도로 파시즘, 카톨릭, 부르주아에 대한 비판을 일관적으로 추구하였으며,
늘 자신이 무신론자인 것에 감사한다고 했었다.
그는 장편과 단편 데뷔작을 모두 초현실주의 화가인 그의 친구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만들었
다.
그래서인지 그 두 작품인 "안달루시아의 개"와 "황금 시대"는 더욱 더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었
으며, 또한 극단적으로 추상적이었다.
예수를 풍자적으로 그려낸 "황금 시대"의 상영 후 그는 멕시코로 망명해야 했으며,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이후에도 그는 평생동안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었으며, 보석 같은 걸작들을 계속 탄생시킨다.
시대를 초월한 천재 예술가의 전형이라 여겨지는 대표적인 인물이라 생각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구로사와 아키라는 아시아 영화를 상징하는 거장이며, '일본의 구로사와'가 아닌 '세계
의 구로사와'로 불리곤 했다.
동양인의 시각에서 구로사와의 영화를 보면 무언가 이질적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시대극인 경우에도 이상하게 서구적인 색채가 느껴지곤 한다.
서양화를 배웠으며 도스토예프스키와 셰익스피어의 문학을 동경하였기에 일본, 혹은
동양적인 면과 서구적인 것에 대한 적절한 조화를 작품 속에서 구현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그는 작가주의에 입각한 예술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닌 대중적인 장르영화의 공
식을 적용하는 상업영화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작품은 예술이 되었다.
대중적인 장르영화의 노선을 따르면서도 독창적인 예술가적 기법의 추구와 치밀한 작
품의 완성도를 통해 관객과 평단 모두를 사로잡았던 탁월한 거장이었다.
두 대의 메인 카메라와 한 대의 서브 카메라로 연출해내는 생동감 넘치는 카메라 워크크
를 통해 "7인의 사무라이"에서와 같은 완벽한 액션신을 빚어낼 수 있었으며, 빛과 어둠
에 대한 섬세한 화면 연출로 인해 흑백 영화임에도 입체적인 영상미를 구현해 내곤 했
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선 언제나 휴머니즘과 유머러스함이 묻어난다.



























































